소수서원(세계문화유산) 꼼꼼히 들여다보기!

201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그 역사적 가치를 증명한 소수서원.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들과 유유히 흐르는 죽계천이 감싸고 있는 소수서원.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 소수서원에서 수많은 유생들이 학문을 연마해 조선을 이끌어 나간 훌륭한 인물들로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세계도 인정한 소수서원에 대해 아직 잘 모르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소수서원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숨결을 조금이나마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소수서원의 역사와 그 역할, 건물 배치와 주변 건물들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공존하는 영주로 힐링 여행을 꼭 떠나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소수서원 설립과 역사

주세붕, 백운동 서원 건립

경상북도 영주시에 위치한 사적 제55호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젊은이들의 학문의 장이었던 서원의 출발점입니다. 조선시대 최초의 사립 대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주세붕은 이색과 정도전, 이황, 이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던 안향의 학문적 업적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래서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듬 해인 1542년, 중종 37년에 안향의 고향인 순흥에 사묘를 세우고 위패를 봉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543년 백운동 서원을 설립하였습니다.

백운동은 서원을 둘러싼 골짜기에 항상 흰 구름이 흐른다 하여 지어진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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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가뭄이 들어 기근이 번져가고 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주세붕은 백성들의 교화를 위해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서원을 세우는 것이 기근을 구하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백운동 서원은 명종 3년인 1548년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부임하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이황은 당시 지방 교육을 담당했던 관학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보며 이를 대신할 기관으로 백운동 서원에 주목합니다.

이황은 백운동 서원을 공인화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1549년 백운동 서원의 사액을 바라는 상소를 올려 국가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황의 요청을 받아들인 명종은 1550년 백운동 서원에 토지와 서적, 노비 등을 하사합니다. 그리고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으라는 뜻으로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글씨를 하사했습니다.

이렇게 백운동 서원은 왕으로부터 그 권위를 인정 받고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되면서 한 단계 성장하게 됩니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국가 공인 사립고등교육기관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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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서원 역할

1. 교육 기관으로서 소수서원

조선 성리학의 중심에 있던 소수서원에서 350여 년간 (백운동 서원 때부터 문을 닫은 1888년까지) 약 4000 여명의 유생들이 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특히 퇴계 이황의 제자들은 대부분 소수서원 출신이었습니다.

2. 종교 기관으로서 소수서원

주세붕이 안향을 배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소수서원에는 이후 1544년에 안축과 안보가 추가 배향되었습니다. 1633년에는 설립자인 주세붕이 소수서원에 추가 배양되었습니다.

3. 학문 자료 소장

소수서원 옆 소수박물관에는 소중한 학문 자료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4. 소수서원에는 주세붕이 만든 다음의 5가지 원규가 있는데, 이를 통해 그 역할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 첫째, 제사를 정성으로 받들 것
  • 둘째, 어진 이를 예우할 것
  • 셋째, 사당을 수리할 것
  • 넷쨋, 창고를 잘 준비할 것
  • 다섯째, 서책을 점검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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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서원 배치

1. 강학당 (명륜당)

소수서원의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보물 제1403호 강학당입니다. 이 곳은 학생들이 모여 성리학 경전을 읽거나 강의를 듣던 장소인 강당이었습니다.

강학당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 기와집으로 대청과 온돌방, 마루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부 대청의 북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소수서원 풍경

2. 지락재, 학구재

지락재는 독서를 통한 학문의 즐거움을 의미하고, 학구재는 성현의 길을 따라 학문을 구함을 의미합니다.

지락재와 학구재는 유생들이 공부하고 자던 기숙사로 스승의 숙소 뒤에 있었습니다.

3. 일신재, 직방재

일신재는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뜻이며, 직방재는 깨어있어 마음을 곧게 한다는 뜻입니다.

일신재와 직방재는 원장과 교수의 집무실 겸 숙소였습니다.

4. 문성공묘

보물 제1402호 문성공묘는 강학당 바로 옆에 있는 건물로 고려의 성리학자인 문성공 안향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고려의 주자라고도 불리는 안향은 송나라의 성리학인 주자학을 처음으로 고려에 전파한 학자입니다.

5. 영정각

소수서원의 뒤쪽에 세워진 영정각은 유교 성현의 초상화를 모신 곳입니다. 위대한 학자들에게 예를 올리고 그들을 기리는 것이 학문의 시작이라는 서원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 죽계천

소수서원 죽계천

소수서원 동쪽에는 소수서원을 끼고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하천인 죽계천이 있습니다. 소수서원의 학생들은 죽계천에 나와 사색을 즐기고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1) 경렴정

경렴정은 죽계천을 따라 펼쳐지는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학문을 하던 곳으로 1543년 주세붕이 세웠습니다.

(2) 경자바위

경렴정에서 바라보면 경(敬)과 백운동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경자바위가 있습니다.

경(敬)은 주세붕이 서원을 창건하며 새긴 것으로 경천애인의 머리글자입니다.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첫번째 덕목이며 흐트러짐 없는 선비의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백운동’이라는 글씨는 퇴계 이황이 쓴 것이라 합니다.

(3) 취한대

취한대는 푸른 산의 기운과 시원한 물빛에 취해 시를 짓고 학문을 하던 곳입니다.

7. 부속 건물

(1) 소수박물관

소수서원 옆에는 선비 정신과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공간인 소수박물관이 있습니다. 소수서원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과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2) 한국선비문화수련원과 선비촌

소수서원 인근에는 선비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선비촌과 선비 정신을 배우고 익히는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이 있습니다.


# 소수서원 건물의 특징

조선 후기 서원들과는 달리, 최초의 서원답게 건물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배열된 것이 특징입니다.

1. 서쪽을 윗자리로 삼는다는 예법인 이서위상(以西爲上)이라는 법칙에 따라 서쪽에는 사당, 동쪽에는 학교와 기숙사를 지은 것이 다른 서원과의 큰 차이점입니다.

2. 강당 좌우에 있어야 할 동서재가 없고, 4개의 재실인 일신재, 직방재, 지락재, 학구재가 독립적으로 산재하며, 다른 서원에서는 보기 어려운 영정각 건물이 있습니다.

3. 다른 서원들은 누각이나 정문 같은 별도의 경계 건물이 존재하는 데 반해, 소수서원에는 후대 서원의 누각이 지녔던 풍류 기능을 담당하는 경렴정이라는 정자만 존재합니다.

4.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도 일반적인 3문 형태가 아닌 외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5. 일신재와 직방재는 각각 동재와 서재로서 다른 서원에서는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소수서원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채로 건립하여 편액을 따라 구분하고 있습니다.

6. 서원 입구에 있는 보물 제 59호 당간지주통일신라시대 이래 이 곳이 사찰이었음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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